< 전시 소개 >

 이은정 작가의 전시 < 기대어 만든 이야기 >는 하나의 유기체인 개인, 집단, 사회를 결성하는 각각의 구성물을 톺아보며 그들 간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작품에서 선보인다. 사회라는 하나의 덩어리를 관찰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성장하는 세포의 모습을 개인과 집단에서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사회의 이러한 유기적 움직임을 파도, 축제, 실타래의 형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집단의 형태와 관계가 얼마나 다양한지, 많은 집단들에 속해있는 개개인의 정체성과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자유롭고 경쾌한 선과 색의 움직임 속에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회를 올려놓고 이를 하나의 거대한 풍광 즉 캔버스 위의 유기체로 표현하여 이미지에 담긴 작가의 상상과 이야기를 전달한다.


<VILLAGE> 시리즈는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는 현상이 이상향을 좇는 과정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생겨난 다양한 집단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담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예컨대 <VILLAGE 4 (부제 : what a side by side with a friend)>는 거대한 사회적 통념에 대항하는 소수의 단체를 색깔을 가진 집합체와 흰색의 집합체로 대비하고 있다. 개개인이 나란히 배열되어있는듯 보이지만 다른 색을 띄고 있는 두 집단의 충돌과 이접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에 이어 <VILLAGE 5 (부제 : 내일이나 다른 날 다시 오면 안될까)>는 이러한 소수의 힘에 포섭되지 않으려 재빠르게 도망가는 다수의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한편 <VILLAGE 8 (부제 : 동감은 개인의 소멸을 지향하는 공동의 일체성과 다르다)>은 기존의 검정 테두리가 아닌 흰색 테두리로 개개인을 표현하여 특정한 이상향과 목적을 가진 집단 내에서 나와 타인의 경계가 흐려지고 무너지는 것이 개인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동감의 과정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집단’이라는 현상 자체와 ‘집단과 집단의 관계’를 다루는 시리즈에서 관객들은 작가가 제시한 여러 도상을 통해 무궁무진한 시각적, 관념적 유영을 경험할 수 있다. 작품 속에 표현된 다양한 집단을 보며 과연 나는 어디에 포지셔닝(positioning)되어 있는지를 자문할 수 있으며 이는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관객 개인의 서사가 만들어질 수 있는 순수한 재료로로서의 가능성도 함께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집단’을 형성하는 개개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작가는 <umwelt> 시리즈를 통해 집단을 이루는 개인의 개성과 독자성에 집중하고 있다. Umwelt(움벨트)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생물체가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세계, 그 개체가 살아온 방식대로 주변환경을 지각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움벨트는 자기만의 소우주를 가진 개개인의 사고방식이 되는 것이다. 움벨트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자기 참조적 현실은 더 확장되어 특정 움베르트를 구성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움벨트의 개념을 아주 다채로운 색깔과 길쭉하게 뻗어나가는 개개인의 표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개인이 개별적으로 구성됨과 동시에 양옆에 자리하고 있는 개개인과 연결되어 끊임없이 이어져 나가는데 이는 한명 한명의 주관적이고 자기 반영적인 관점이 곧 개별자의 우주이자 세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각기 다른 우주와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교집합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차원의 움베르트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은정 작가의 작품 세계는 마치 파도와 축제를 연상케 한다. 휩쓸리는 거대한 파도 그리고 두근거리고 환희에 찬 설레이는 축제의 모습. 같은 방향으로 차오르는 파도의 모습에 담긴 개별적인 물방울과 물줄기에서 우리는 ‘나’라는 유한한 공간과 나의 영역 밖을 이루는 다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화려한 축제의 불꽃놀이에서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빛깔들과 무수한 노랫소리, 춤사위의 향연이 펼쳐지는 축제의 장면이 떠오르며 끝나지 않을 이 축제의 서사가 어디로 향해갈지 궁금증을 갖게 한다. 이렇듯 이은정 작가는 말과 글이 아닌 캔버스 위에 펼쳐진 유동적이고 유려한 이미지를 통해 나의 삶을 둘러싼 사회와 공동체(village) 그리고 개개인의 umwelt(움벨트)를 직면하게 함으로 신선한 사유의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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