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utine - 박소현 PARK SO HYEON
익숙함은 정말 지루하기만 한 것일까.작품 속 강아지는 노란 바나나껍질을 머리에 쓰고 물가에 조용히 잠겨 있습니다. 눈은 절반쯤 감겨 있고, 표정은 무표정에 가깝습니다. 시선은 앞을 지나가는 오리 가족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화면 위에는 “ROUTINE”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습니다. 일상, 반복, 평범함이라는 말들이 떠오릅니다.
그림 전체는 부드러운 흐름 속에 있습니다. 경계는 번지고, 색은 겹겹이 얇게 쌓여 있습니다. 큰 사건도, 극적인 감정도 없습니다. 오리들은 아주 천천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에도, 말 대신 머무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장면은 ‘지루함’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합니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놓치기 쉬운 감정들,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만 쌓이는 관계들. 빠르고 효율적인 것에 길들여진 삶에서 자주 무시되곤 하는 조용한 순간들입니다.
오리 가족은 단순한 동물이 아닙니다. 지켜보고 싶은 존재, 보호하고 싶은 관계, 익숙하지만 소중한 시간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머리에 쓴 바나나껍질 역시 익숙한 일상의 일부로 보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끝내기 위한 신호가 아니라, 계속되는 삶의 배경입니다.
이 작품은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금, 그 안에 깃든 마음을 보여줍니다. 반복된다는 이유로 흘려보낸 감정들, 그 익숙함 속에 숨겨진 위로와 안정감.
무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시간이 조용히 겹쳐져 있습니다.〈Routine〉은 그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지루한 하루 끝에, 문득 그 반복이 우리를 지키고 있었음을 깨닫게 만듭니다.
Is familiarity always just boring?
In this piece, a dog is quietly submerged in water, wearing a yellow banana peel on its head. Its eyes are half-closed, its face nearly blank. It watches as a family of ducks drifts slowly by. Above the scene, the word “ROUTINE” appears in bold, clear letters—evoking repetition, daily life, the ordinary.
The whole composition flows gently. Edges blur. Colors are built up in soft, translucent layers. Nothing dramatic happens. No big emotions. The ducks glide forward as if nothing in the world needs rushing. The dog's gaze carries no urgency—only a quiet presence, feelings that linger in silence rather than words.
This scene offers a new way of looking at what we call “boring.” The feelings we miss in the repetition of days. The bonds that form not through grand events, but in the unnoticed rhythm of time. These are the quiet spaces we often ignore in a world trained for speed and efficiency.
The ducks aren’t just animals. They seem to embody something the dog wants to protect—a relationship, a rhythm, a time that’s ordinary, yet deeply cherished. Even the banana peel feels like part of that world. Not a sign of change, but of continuity. Not a beginning or an end, but the backdrop to a life still unfolding.
This piece doesn’t tell a dramatic story.It offers a quiet moment—where nothing seems to happen, yet something is deeply felt. Emotions that arise not despite routine, but because of it. Comfort, stability, presence—hidden in the everyday.
It may seem indifferent at first, but within that stillness, time is quietly layered.Routine asks us to look again.To see that at the end of a dull, repetitive day, what seemed forgettable was, all along, quietly keeping us safe.
[ 전시 소개 ]
《Where Are We Going》
박소현
PARK SOHYEON
2025.05.01 ~ 2025.05.31
눈 덮인 숲은 조용합니다.
그 침묵 위로 몇 마리 동물의 발자국이 이어집니다.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 동물들.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박소현 작가의 작업은 그 고요하고 낯선 풍경에서 시작됩니다.
20대의 끝자락, 작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물음은 하나의 여정이 되었고, 그 여정은 동물의 모습으로 캔버스에 자리 잡았습니다.
《Where Are We Going》은 확신 없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감정의 기록입니다.
멈추고 싶은 충동, 다시 나아가는 순간들, 애써 담담하려는 마음.
작가는 이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을 동물의 눈빛 속에 담아냅니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눈’이 있습니다.
작품 속 동물들은 모두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시선은 외부가 아닌, 내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망설임, 호기심, 용기, 조용한 따뜻함.
그 감정들이 눈동자에 머물고, 관람자는 그 시선을 따라가게 됩니다.
《Where Are We Going》은 무엇을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각자의 이유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이들에게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조용한 틈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박소현 작가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은 이제 이 전시를 마주한 우리에게도 닿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 와 있습니까.
그 질문 안에서 당신의 시선이 잠시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며.
MGFS100 갤러리의 좋은 친구, 박소현 작가의 개인전 《Where Are We Going》을 통해 당신의 내면에도 잔잔한 울림이 닿기를 바랍니다.
No | Subject | Writer | Date |
No Questions Have Been Created. |
박소현 "Routine" PARK SOH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