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 보이는 오후 - 데이비드 염 DAVID YOUM
분홍빛이 화면을 가득 채운 캔버스 위에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형체가 희미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인물들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으나,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듯 혹은 관찰하는 듯한 기묘한 기운이 감돕니다. 이들과 함께 놓인 식물의 싱그러움이 어우러져, 낯선 풍경이면서도 은근히 친근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작품을 마주하면 마치 꿈같은 오후 어느 순간으로 초대받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캔버스를 둘러싼 분홍색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이 색감은 고백을 주고받을 때 느껴지는 몽글거리는 설렘과 살짝 달아오른 볼의 열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화면 전체에 부드럽게 퍼지는 분홍빛은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관람자의 내면 깊숙이 감정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 덕분에 서사가 한층 깊어지고, 작은 디테일까지도 한결 다채롭게 돋보이게 됩니다.
[ 전시 소개 ]
너를 민다.
앞으로 뒤로 꼭 그만큼만 가고,
그만큼 다시 돌아올 걸 알기에 세게 밀어도 본다.
어깨 나란히 걸음 한번 걸은 적 없어도
너의 체면이 내 앞에 서서 밤보다 까만 그림자를 만들어 슬픈 적도 있지만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길이 되었다.
그 해 4월, 아직 좀 그렇고 그렇던 날
나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지. 그때 나를 찾아 돌려 준 이가 너였어.
나조차 내 편일 수 없던 순간에 마침맞게 함께 있었던 사람도 너였고.
수많은 너의 언어를 알고도 모른 척 하고, 그렇게 나의 서투른 주장은 이기적이었는데도 넌 늘 그 자리에 있었지.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면 내 길을 더 의미 있고, 용기 있게 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지.
난 지금 너에게 가고 있어.
오늘 아침 받은 ‘배송 중’ 이라는 택배 문자처럼.
네가 나를 오래 기다렸던 것처럼.
다시 4월.
I
작가의 작업은 작가의 시간과 기억을 들여다보는 재현적 과정이다.
작가의 시간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기억은 사실, 좋은 것 보다 상처, 후회가 더 많다.
그렇게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는 고백은 더 과장되고 마음 졸인다.
이런 마음 졸임과 고백이 작업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절대적 위로가 필요한 나약한 보통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작업에 등장하는 가족, 평안한 거실, 오래된 골목길, 식물, 고양이, 오래된 장난감 등은 오랜 시간 동안 작가와 함께하며 위로와 위안을 주었던 기억, 사물 들이다.
이러한 작가의 시원적 시간과 오래된 사물은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불안한 감정 또는 반대로 평안한 기억들을 꺼내어 현재의 고통을 치유 하는 매개체들이다.
더 나아가 작가가 이토록 작업을 통하여 시각적 경험과 기억들을 관객과 공유하고 공감받기를 원하는 이유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무난하게 함께 하며, 또 다른 상대적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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